[우먼카인드]SELF-REGARD 시인의 생활 경영 : 시인 김소연


"마음의 에너지는 생활인으로서 

하루를 잘 돌볼 때 회복되는 것 같아요."



김소연 시인, <시인의 생활 경영>

최지은 인터뷰·정리


우먼카인드 14호 혼자 있는 시간


근 한 달 만의 외출이었다. 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김소연 시인을 만난 것은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침투해 많은 것을 멈추게 한 지 꼬박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후였다. 1993년 등단 후 《수학자의 아침》 《i에게》 등 다섯 권의 시집과 《마음사 전》 《나를 뺀 세상의 전부》 등 산문집으로 사랑받아온 그는, 멀리 떠날 수 없었던 2020년이 저물어갈 무렵 오랜 여행의 기록을 담은 산문집 《그 좋았던 시간에》를 내놓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을 못 가게 됐으니 섭섭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며 김소연 시인이 말했다. “아주 가끔, 이국적인 날씨가 그리울 때는 있어요. 하지만 섭섭하지는 않아요. 저에게 여행은 원래 집을 떠나 은신하기 위한 시간이었거든요.” 어딘가가 아닌 여기에서 충분히 혼자가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 었다는 그의 고백이 독특한 리듬감과 함께 마스크 너머 공기 중으로 울려 퍼졌다. 시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의 공기는 낯설도록 산뜻했다. 



코로나19로 바뀐 일상 앞에서 당황하는 사이 1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생각해보면 기적처럼 1년을 보냈네요. 통장 잔고가 대단히 많은 것도 아니고 거의 모든 일이 없어졌는데 무던하게 버틴 것 같아요. 사실 전에는 들어오는 일을 거절할 때마다 쩔쩔매고 에너지도 많이 썼어요.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한 편으로는 부러워하고, ‘나는 왜 이렇게 일을 조금만 하고 싶어 하지?’라는 열패감 을 느끼기도 했죠.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일을 못하게 됐을 땐 나를 탓하지 않 을 수 있더라고요. 내 게으름과 내향성, 고집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 상황 이 그런 거니까요. 그래도 된다고 허가받은 기분이었어요. 



일이 줄어들며 늘어난 시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엄마와 함께 보냈어요. 예전에는 바빠서 엄마에게 늘 미안했거든요. 게다가 저희 엄마는 드라마 <아들과 딸>에 나오는 엄마처럼 가부 장적이고 딸에 대한 박해가 심한 분이셨어요. 그런 엄마에 대한 미움과 그래도 내 가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저를 계속 불편하게 했죠. 그런데 일이 없어지고 시간 이 너무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엄마를 돌보는 동안 엄마에 대한 미움이 다 사라졌 어요. 그렇게 싫어했던 엄마를 용서할 수 있게 된 거죠. 저에게는 지난 1년이 이 상한 치유의 시간이었어요. 



《마음사전》의 저자 소개에 쓰셨던 “마음의 경영이 이 생의 목표이므로 생활의 경영 은 다음 생으로 미뤄놓고 있다”는 문장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 음의 경영’은 나이를 먹는다 해서 쉬워지는 일은 아니더라고요. 


《마음사전》의 내용은 제가 마흔이 되기 전, 30대였을 때 썼어요. 그때만 해도 내 마음에는 유년기에, 주로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들이 있었고 그 위에 다른 상 처가 더 생기면 정말로 죽을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내 마음을 잘 간수하고 돌보 려 애썼죠. 그런데 그 후로 알게 됐어요. 마음이 황폐해지거나 어지럽혀지거나 부 서지고 찢어지더라도 조금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그럭저럭 회복된다는 걸요. 내가 회복력은 좋은 사람이니까 흉터로 얼룩진 마음이 그냥 나라는 걸 받아들였죠. 그 리고 미뤄두었던 ‘생활의 경영’을 지금 하고 있는 걸 보면 지금이 다음 생인가 봐 요.(웃음) 



김소연 시인이 최근에 발표한 여행 산문집 제목은 ‘그 좋았던 시간에’입니다. 시인이 여행한 이국의 풍경과 이야기를 보고 듣다 보면 책 제목이 마치 과거의 서랍 속으로 들어가버린 우리의 일상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련해지기도 합니다. 최지은 작가가 만난 김소연 시인은 작년 한 해 국경을 넘나드는 여행이 아닌 집에서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엄마와 함께 일 년을 보내며 마음의 치유를 얻고, 생활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잘 돌보는 일에 집중한 시인으로부터 생활을 잘 경영하는 것이 마음의 에너지를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지은 

《아이즈》 등의 매체에서 기자로 일했고, 한국 대중문화와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주로 쓴다. 지은 책으로 《엄마 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괜찮지 않습니다》가 있고, 함께 쓴 책으로 《을들의 당나귀 귀》와 《페미니즘 교실》이 있다. 여성의 삶에 관해 읽고 쓰고 전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사진・우먼카인드 편집부(촬영 공간 제공・카페 퍼셉션)



우먼카인드 14호 혼자 있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