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의 시대, 침묵의 미덕


21세기는 통신이라는 종교를 만들었다. 우리는 이제 언제든 연락이 닿아야 하고, 어떤 형태로든 끝없이 정보 교환에 참여해야 하고, 쉼 없는 재잘거림 가운데 자신이 맡은 몫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신념을 소중히 받든다.


무의미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넘쳐나는 한낱 소음이 아니라 도덕적 선인 양 여긴다. 바야흐로 휴대폰은 신의 말씀을 전하는 사제가 되었다. 따라서 인스턴트 메신저는 더 깊은 영적 교감으로 가는 핫라인이다. 우리는 견디기 어려운 소음에서 벗어날 확실한 은둔처를 침묵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침묵의 큰 매력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아 부루퉁한 아이처럼 구석에 틀어박히는 데 있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침묵은 재잘거림이 잦아든 뒤에 남는 무엇이 아니다. 쓰고 남은 자투리도, 공백기도 아니다.


그보다는 밤을 뒤덮는 어두움이 그렇듯 풍성함과 심오함, 신비로움과 공명으로 가는 길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했듯 “침묵은 지혜를 살찌우는 잠이다.”


침묵은 지혜를

살찌우는 잠이다.


침묵의 미덕을 떠올리노라면, 작가 세라 메이틀랜드가 직접 살아 낸 실험이 생각난다. 소음이 귓전을 꽝꽝 때리는 현대 도시 생활에서는 이제 침묵의 특성을 경험하기가 어렵다. 그는 그 특성을 다시 찾아보는 탐구에 나섰다. 그의 체험기 《침묵의 책》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대목은 침묵을 찾아 떠난 여행의 어려움을 거침없이 기록했다는 것이다. 메이틀랜드는 친구가 그리웠다.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대화에 있기 마련인 시시덕거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고상한 임시방편이 될 BBC 라디오 4는 특히 아쉬웠다.


그렇지만 계절이 끝없이 바뀌도록 스스로 도시를 멀리 떠나 있으면서 그는 차츰 내면의 목소리, 즉 이성에 앞서 일어나는 의구심과 직감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값진지를 배웠다.

그리고 주변 세상을 새로이 돌아보는 법도 배웠다.


이를테면 자연과 진심으로 어우러지는 데서 진정한 즐거움을 찾아냈다.

정원을 가꾸는 재미에서부터 중력, 전기, 빛, 밀물과 썰물, 소리 없이 돌아가는 지구 자전 등 우리가 기대어 사는 힘 대다수가 조용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재미까지 온갖 기쁨을 느꼈다.

메이틀랜드는 가장 놀라운 일이 “침묵이 품은 활력”을 발견한 것이라고 적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의 유명한 마지막 문장에서 언어의 한계를 도발적으로 표현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


그가 이 문장을 언어가 끝나는 경계선 너머에서 의미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뜻으로 썼다고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언어 철학자에게 기대하기에는 너무 큰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말로도 유명하다.


내가 쓰는 언어의 한계가

곧 내가 아는 세상의 한계다


문장을 뒤집어도 눈부신 통찰이다.



뉴필로소퍼 1호 너무 많은 접속의 시대



글_ 마리나 벤저민 Marina Benjamin


미국의 언론인이자 소설가. 《뉴 스테이츠맨》의 예술 부문 편집자,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의 예술 부문 부편집자를 지냈고, 현재 잡지 《이온》의 편집차장이다. 《데일리 익스프레스》와 《스코틀랜드 온 선데이》에 글을 싣고 있다. 저서로 《바빌론에서 보낸 마지막 시절》 《폐경? 새 출발을 위한 휴식!》 등이 있다. 저서 《로켓에 실은 꿈》은 유진 에미 문학상 최종 후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