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정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캐스파 헨더슨과의 인터뷰
대담: 나이젤 워버튼 뉴필로소퍼 편집 위원


캐스파 헨더슨Caspar Henderson은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관한 저술에 힘쓰고 있는 작가 겸 저널리스트다. 2009년 영국작가협회가 수여하는 로저디킨상을, 2010년 영국왕립문학학회에서 수여하는 저우드문학상을 수상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과 《새로운 불가사의 지도A New Map of Wonders》로 세계적인 호평을 얻었으며, 최근에는 소리를 주제로 한 신작 《소음 이야기A Book of Noises》를 집필하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영국의 탄소 제로화 추세를 살피는 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먼저 묻는다. 에너지란 무엇인가?

영원한 기쁨이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우선적으로 열역학 제2법칙을 따른다. 생화학자 알베르트 센트 죄르지는 생명은 쉴 곳을 찾아다니는 전자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에너지 흐름이 없다면 우리는 신진대사를 지속하거나 생명을 이어나갈 수 없다.


물과 식량, 휴식처, 열 발생 등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기본 요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동 등 다른 측면에서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언제나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가.

알다시피 생명 에너지는 먹을거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식물과 식물을 먹는 동물, 그리고 둘 다 먹는 우리 인간까지 말이다. 그러다 인류는 불을 이용하게 되었고, 덕분에 산화 작용을 거쳐 에너지를 방출하게 되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엄청난 에너지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현대의 산업 경제가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노예 노동력을 석탄이나 석유, 가스 같은 화석연료로 대체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꽤 흥미로운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가장 큰 화두는 천연자원을 낭비하는 인간의 생활양식이다. 우리는 오랜 세월 축적된 천연자원을 함부로 낭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대기오염을 유발했고, 결과적으로 오존층을 파괴하고 지구온난화를 초래했다. 개인의 차원에서 현 상황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 혹은 철학적 쟁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동시에 좋은 대답을 내놓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사람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 문명이 시험대에 오르게 되리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개인은 이런 문제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도 일상적인 삶을 완벽하게 꾸려갈 수 있다. 자원만 있으면 세계 어느 곳에서든 원하는 물건을 거의 다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연비가 형편없는 SUV를 몰고 다닐 수도 있고, 에너지 효율이 최악인 집에 살 수도 있고, 얼마든지 자주 비행기로 여행을 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면서 뒷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신경을 쓰기로 마음먹는 순간, 사람들은 시급한 윤리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삶의 본질은 무엇인지,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구분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만 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만큼 책임을 져야 할까? 또 우리가 미래 세대를 위해 지금 당장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과학적인 전망은 확실히 어둡다. 지구촌 전체가, 특히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들이 지금처럼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머지않아 엄청난 후폭풍이 닥칠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 소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이런 윤리적 질문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공상과학 소설가 킴 스탠리 로빈슨의 견해를 접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어떻게 보면 생태계의 미래는 암울하고, 생물 다양성과 지구촌의 번영을 위협하는 에너지 소비 문제는 몹시 걱정스럽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앞으로는 청년 세대가 굳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지극히 단순한 윤리적 질문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환경 파괴를 줄이고 미래 세대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겠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정하면, 개인의 삶은 대체로 자신이 선택한 대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새롭고 흥미로운 분석이다. 우리가 유한한 에너지 자원을 사용한 결과 환경오염이라는 끔찍한 상황이 닥쳤지만, 그 상황이 오히려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나는 현 상황이 인간의 존속을 위협하는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또한 환경에 무심한 사람들과 환경을 걱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사이를 점점 갈라놓는 문제라고만 생각해 왔다.

물론 그런 관점이 어쩌면 상황을 파악하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쉽게 외면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환경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많고 그런 행동을 통해 직접적인 혜택을 받거나 뿌듯함을 느낀다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개인의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관심을 거둔다는 생각도 든다. 정치학자들은 이것이 고도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집단행동의 문제점이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난제라고 설명한다. 최대한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집을 짓고 근처 농장에서 키운 채소만 소비하는 사람도, 자신의 행동이 세상에 얼마나 보탬이 될까 하는 회의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이 옳은 행동임을 알기에 기분이 좋아지고 타인들에게 본보기가 된다는 자부심도 들겠지만, 개개인의 행동이나 선택이 영향을 미치기에는 환경 문제가 터무니없이 광범위하다. 바로 이런 불균형 때문에 우리가 환경 문제를 마주할 때, 마음속에 갈등이 생기고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결국에는 문제를 회피하면서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환경을 위해 바꿔 나가야 할 온갖 현실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매일 시민 공청회에 참석하거나 이웃집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에너지 문제는 동물복지의 문제와는 다른 면이 있다. 예를 들면 내가 동물복지를 위해서 채식주의자가 되거나 육류 섭취량을 줄이기로 마음먹으면, 내 생애 동안 전 세계에서 고통받는 동물의 개체 수가 반드시 줄어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동물이 사육되고 도축되는 한 모든 동물을 고통에서 구제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육류 소비를 줄이거나 포기하면 적어도 내 행동으로 인해 고통의 총량이 미비하지만 얼마나 감소했는지 수치로 드러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이에 비해서 에너지 문제는 훨씬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 머릿속에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는 관념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이 지점을 넘어서면 나의 행동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우리가 에너지를 절약했든 낭비했든 상관없이, 에너지 문제는 이미 심각한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 작은 변화들이 장기간 축적되어 작은 변화가 약간만 더 추가되면 균형이 무너지고 특정한 현상이 갑자기 우세해지는 상태 또는 단계.

기후과학에는 불확실한 측면이 있다. 우리는 티핑 포인트가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 모른다. 그래서 지구의 평균 기온이 해마다 0.1도씩이라도 상승한다면, 매 순간이 심각한 위기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가 《2050 거주불능 지구》에서 이 부분을 잘 설명해 놓았다. 나는 국제 사회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더 늦기 전에 기술 투자를 확대해서 에너지 소비를 전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은 현재 전력의 절반 이상을 풍력이나 태양광과 같은 재생 에너지로 공급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단한 성과이기는 하지만, 알다시피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다음 단계로 이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선제적 투자가 중요하다. 더구나 그것이 아예 터무니없는 규모도 아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기후변화위원회(영국 정부에 자문을 제공하는 독립적인 기구)가 내놓은 전망에 따르면, 초기 투자 비용은 GDP의 1~2퍼센트 정도로 추산되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투자가 사회 전반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영국도 커다란 정치적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 그것은 현 상황을 크게 바꾸지 않고 유지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기득권 세력이다. 이런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역시 큰 틀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우리가 에너지를 좀 더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대의에 동참하려면,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이 정치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정치적 변화가 선행되어야 에너지의 생산과 사용에 대규모 전환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인가?

그렇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우리는 변화를 겪고 있다. 최근 3~4년 동안, 그러니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눈에 띄는 변화가 진행 중이다.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더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미국은 의미 있는 정권 교체를 이뤄냈고,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도, 총자산 규모가 11조 달러에 이르는 대형 개인 투자자들이 세계적인 대형 은행 여러 곳에 압력을 가하면서 탄소 집약적 사업에는 자금 조달을 중단하고 친환경 사업에 대출을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이제 우리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과연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할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상황이 변한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의 생각도 변했다. 의식의 변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봐야 한다. 이제 사람들은 우리 삶의 터전인 생태계에도 한계가 있음을 자각하고 있고, 한계치를 넘어설 때 생겨날 위험에 대해서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과거에도 우리는 태도와 행동의 변화를 겪어 보았다. 여러 나라에서 흡연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바뀌었는가. 1950년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달라졌다. 에너지 문제는 그보다 더 큰 도전이지만, 그렇다 해도 공동체 문화는 변하기 마련이고, 우리 사회는 어려운 당면 과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변화를 믿는다.


사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 에너지 문제를 가르치지 않았다. 당시는 핵무기 폐기 가능성에 더 몰두했을 뿐, 친환경 에너지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반면 오늘날은 거의 모든 학생이 학교에서 에너지 문제를 접하고,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가 지구촌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 이제 그 정도는 일반적인 상식이 된 듯하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해외여행에 열광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그 변화 양상이 흥미롭기까지 하다. 당신 말대로 사람들은 희망적인 징후가 뚜렷해도 이 부분을 쉽게 무시하고 비관론으로 돌아서기 쉽다. 게다가 임박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와중에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듯한 문화 현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항공권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이제는 영국인이 미국과 아시아, 호주 등지로 여행하는 일이 흔해졌다. 내가 어렸을 때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고 특별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맞다. 그때는 그랬다. 사람들은 구획화compartmentalisation*라는 방어 기제를 동원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환경을 몹시 걱정하면서도 쉽게 뉴욕 같은 곳으로 날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물론 대가를 치른다고 스스로 합리화를 해보지만, 비행기 값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도 항공 여행의 경우, 기술적인 해결책을 찾는다면 어느 정도 희망이 있다. * 자신의 행동이 평소 주장하는 신념에 어긋날 때, 신념과 행동이 별개인 것처럼 합리화하는 태도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

항공산업 종사자들은 이른바 ‘지속 가능한 항공 연료’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데, 이론상으로 이 연료는 완전한 탄소 중립 상태에서 생산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생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대량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물론 대량 생산에 성공하더라도 비행기 연료가 기후에 ‘무해’할 리 없지만, 환경 보전에 꽤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이 언제나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때로는 제도적 차원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부유한 국가와 중간 소득 국가들의 자원을 대대적으로 동원해야 사회 전반에 영향력이 미치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여전히 상충되는 문제는 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실천하다 보면, 개인의 삶에서 만족스럽고 가치 있는 부분을 소홀히 하게 된다. 가령 사람들이 대부분 해외여행을 즐기는데, 환경을 위해 여행을 포기하다시피 하면 곧바로 삶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완전히 버리고 개인적인 욕구를 자제하면서 환경오염을 줄이는 건전한 생활을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에너지를 적당히 소비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절충안을 찾을 것인가. 아마도 우리 내면의 목소리는 개인이 에너지를 아무리 써도 낭비하는 수준은 절대 아니라고 안심시킬 것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그런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합리화에 능하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는 흔히 ‘거대한 가속the great acceleration’*이라는 문화 속에서 우리 삶을 더욱 흥미롭고 다채롭게 해주는 자극을 쉴 새 없이 받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으면서, 에너지 절약과 멋진 삶의 완벽한 공존을 추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에 우리는 분명히 이런 삶을 살았다. 고대 중국이나 다른 어떤 문명을 떠올리더라도, 사람들은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을 크게 남기지 않고도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고유의 시가 있었고 친구와 주고받는 편지가 있었으며 전통 악기와 훌륭한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전 세계에서 인구, 경제 규모, 자원 및 에너지 소비량이 동시다발적으로 급증한 현상. **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의 배출량.

따라서 우리가 생각을 가다듬으면, 해외여행에 앞 다투어 나서는 것보다 ‘여행하지 않는 삶’이 훨씬 더 유익하다고 깨닫게 될 여지가 남아 있다. 내 지인 중에 업무상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곳곳을 날아다니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다며 크게 만족하는 눈치다. 또 최근에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에는 사업차 영국에서 싱가포르,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뉴욕까지 열흘 안에 돌아다녀야 했지만 지금은 모두 온라인 회의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해외 출장의 필요성이 줄어들면 좋은 점이 있다. 여러 번의 해외 출장을 포기하는 대신 단 한 번의 멋진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가령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로 날아가 산호초가 모두 사라지기 전에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꽤 바람직한 절충안이 될 것이다. * 오스트레일리아의 북동 해안을 따라 발달한 거대 산호초로 멸종 위기에 있다.


하지만 F1 자동차 경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스포츠의 규칙을 바꾸거나 배기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좋은 연료를 사용하도록 규제하는 것 외에, 액셀을 밟아 속도를 내려는 운전자를 말릴 방법이 없다.

아마 그럴 것이다. 뾰족한 수가 없다. 친환경 연료를 넣고 달린다 해도 자동차는 여전히 엄청난 원료 물질을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속도를 즐기기에는 전기차가 내연 기관 엔진을 사용하는 차보다 훨씬 낫다. ‘부웅!’ 소리가 크게 나도록 사운드 시스템만 장착하면, 액셀을 밟을 때 엄청난 가속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일반 자동차의 배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가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다. 다시 말해, 평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성향상 평등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은 자기 몫 이상의 자원을 차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자기 몫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의 생존에 필요한 자원까지 함부로 사용하면서 후대에 물려줘야 할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손쓸 도리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을 설득해서 이 세상은 우리가 함께 더불어서 살아가야 할 공간이라는 점을 일깨우면, 거기서부터 어느 정도 책임감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동의한다. 어떤 사람들은 무심하게 환경을 파괴하고,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다른 사람들을 짓궂게 놀리기까지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의 하나로써, 환경을 위해 선행에 앞장서는 사람들의 사회적 입지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령 슈퍼 리치들에게 중과세 면제 혜택을 주면서, 초호화 요트를 구입하는 대신 생태계 복원과 환경 교육에 투자하고 본인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라고 권장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일 카네기의 공공도서관 설립은 대성공이었다. 부자들이 토양 복원과 해양 보호에 투자하고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도 있다.


※ 이 글은 뉴필로소퍼 16호 <에너지, 기로에 선 인류> 중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캐스파 헨더슨과의 인터뷰를 발췌한 것입니다.


뉴필로소퍼 16호 에너지, 기로에 선 인류